꼰대성에 대해

내가 즐겨 찾는 ‘다윗의 서재’에서 발췌.

http://blog.naver.com/gilsamo

 

“‘동방예의지국’은 대한민국의 빛나는 닉네임이다. 어른을 공경하는 건 좋은 전통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미덕이다. 장유유서의 민족적 전통은 어른스럽지 못한 막무가내 식의 꼰대기질까지 아우르는 건 아니다. 젊은이가 어른을 공경해야 하는 당위와 별개로 어른은 젊은이들에게 공경 받을만한 덕과 인품을 갖춰야 한다. 두 입장은 서로 양립하면서 서로를 삼투압으로 피드백해야 한다. 이것이 결락된 어른철학은 교조화된 권력에 빠져 결국 우리 사회를 시끄럽고 추하게 만든다. 생물학적 나이가 어른의 크기를 규정하지 않는다. 어른의 본질은 외재적 숫자가 아닌 내재적 품격에서 발현된다.”

 

“나이가 권력이 된 것은 경험의 두께를 맹신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 살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라는 권력화된 감각의 축적률이 모든 진리 인식의 최상단에 놓인다. 그렇기에 경험의 물리력을 수단으로 젊은이를 훈계하고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자기의 경험’으로서 타자마다의 고유한 상황배경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모순을 가진다. 더욱이 경험은 외재적 상황과는 또 다른 개인의 인지.수용.해석 능력의 편차에 따라 각기 다른 밀도로 수렴된다. 나이라는 일차원적 물량만으로는 논증하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부피와 질량의 함수관계를 관통한다는 얘기다.”

 

“나이가 많다는 것에 대한 함정은 철학사적으로 영국의 경험론자들이 가졌던 불편한 오해와 맥을 같이 한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을 비판하며 경험에 의한 귀납적 도출을 역설했다. 그러나 베이컨의 경험론은 데카르트에 의해 공박당했다 … 감각과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론과 사유와 이성을 절대시한 합리론은 서양철학의 두 뿌리다. 이후 칸트에 의해 두개의 사조가 통합되어 새로운 인식론의 지평을 열기까지 감각(경험)인가 사유(이성)인가의 논쟁은 서양철학사의 뜨거운 토론주제였다… 칸트는 그의 인식론에서 경험을 재료(내용)로 삼되 경험과는 상관없이 타고난 인식능력(형식)을 통해 보편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사유는 내용이 없어 공허하고 지성의 능동적 활동에 따른 개념이 없는 경험은 틀과 형식이 없어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나이듦에 대한 고매한 통찰은 헤밍웨이를 노벨상으로 이끈 ‘노인과 바다’의 웅숭깊은 주제와도 닿아 있다.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의 포인트를 한 노인(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투혼으로 잡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면적 감상은 헤밍웨이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주인공 산티아고의 진정한 위대함은 물고기와의 죽음을 건 혈투가 끝난 후 별일 없다는듯이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여유있게 커피를 마시는 데 있다. 강렬하고 지독한 삶의 순간순간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 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노인 산티아고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결국 정신과 영혼의 고결한 크기야말로 나이듦의 본질이며 숭고한 생명력이다.”

 

“물론 경험은 중요하다. 하지만 경험 못지 않게 사유와 이성도 중요하다. 그리고 겸양과 절제는 나이듦의 궁극이다. 감각에 대한 맹신으로 야기된 교조화된 경험론은 책 한권 읽고 세상을 재단하려는 교만과 동일한 성질의 오류다 … 비트켄슈타인의 말처럼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것이 세상의 진리를 설파하는 보편적 잣대가 되기에는 한없이 작고 미처하다. 나이듦이란 본질적으로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얼마전 교회의 한 청년(나보다 13살이 어린)에게 ‘형이 너보다 조금 더 살았으니까 해주는 말인데’ 하면서 면박을 줬다가 속칭 ‘꼰대’가 된 것 같아 얼굴이 화끈해진 경험을 했다. 장난으로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였지만 몇일 후 그 청년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독일까지 왔고 사실 격려가 많이 필요한 섬세한 친구란 걸 알고 어찌나 스스로가 하찮고 후회가 되던지. 짧은 경험 안에서도 그것을 자신만의 고유한 성찰을 통해 멋스런 통찰력으로 바꾸어내고 또 그걸 살아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오랜기간 축적된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유의 틀로 정제시키지 않았거나 혹은 타성에 젖어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꼰대가 되는건 정말 한순간이다. 강자 앞에선 숙이고 약자 앞에선 강한, 비겁하고 과시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두렵다.

나이가 조금 들고나니
잘 모르는 것 앞에선 침묵할 수 있는게 참 용기고 멋인 것 같다. 그리고 참 달변가는 적게 말하되 많이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것. 깊이 사유하고 삶으로 체화시키지 않았다면 입을 다무는게 일단 유익한 것 같다. 설령 살아낸 경험이라 해도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한마디인지 스스로 정직할 필요가 있다. 꼰대가 되는건 한순간, 나이는 상관없다. 상대적 약자 앞에서 나를 증명하려는 비겁함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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