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 사물의 이력中

 

pxd 블로그를 뒤지다가 서평을 보고 한국 방문했던 지인을 통해 배달. 주변 일상적인 사물들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놀라워하는 경험을 가지게 되길 기대하며 시작한 책. 가벼운 마음으로 술술 읽었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있어서 기록해둔다.

 

1.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발전’은 편리성의 강화와 연관이 되는 경향이 있다. 과정에서 생기는 friction을 최소화하여 최소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간다. 기술 발전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 책은 형광등과 필름 카메라 등의 사물을 통해 우리가 말하는 ‘발전/진보’로 인해 사라지는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 깊이 생각하고 있던 주제다.
“빛의 형상에도 각각 차이가 있다. 백열등은 둥그런 빛이 확산되는 데 반해 형광등과 네온 불빛은 선을 이루고 있고 LED는 몹시 선명한 점으로 존재한다. LED 조명 아래에서는 빛 공간이 형성되기 어렵다. 즉, 냉정해 보일 뿐 풍부하지는 않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래서 확산되던 빛의 형상, 달리 표현하면 묵직한 덩어리감이 사라지고 어둠을 밀어내는 원초적인 기능에 충실해진다는 느낌이다. 광원이 전면적으로 바귀는 것은 무엇보다 수십 년간 경험해온 빛의 질감이 삭제되는 것이기도 하다 … 백열전구가 다른 광원으로 대체된다는 것은 ‘어슴푸레하다, 은은하다’라는 식의 표현이 그저 ‘밝다, 환하다’로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이제는 전기 소모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퇴출되는 백열전구를 대신해서 LED전구가 한결 더 밝게 세상을 비춰줄 것이다 … 하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아날로그 음반에서 잡음을 제거한 디지털 음원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p.19-21)
“때로는 너무 아름다워서, 때로는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렌즈에 담기를 포기하고 마음에만 남겨둔 것이다. 필름은 기껏해야 36장 밖에 담을 수 없으니 무턱대고 촬영할 수 없다. 여분의 필름을 몇 롤 준비했다고 해도 새 필름으로 갈아 끼우는 사이에 중요한 순간을 놓칠 수 있으니 신중할 수밖에… 필름이 주는 불편함이 신중함을 낳은 셈이다.필름이라면 아끼고 아껴서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겠지만 디지털 카메라로는 마냥 찍어댄다. 나중에 지우면 되기 때문에 그다지 신중을 기하지 않는다.”
이 문제의식은 지난번 읽었던 재독학자 한병철 교수의 인터뷰에서 본 ‘제프쿤스의 조각, lg스마트폰, 그리고 브라질리언 왁싱의 공통점’에서 시작된 것인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것, 아날로그적인 것’ 또한 인류역사의 긴 시점에서 놓고 보면 한 시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워크맨과 삐삐를 추억하는 세대 또한 그로부터 1000년전 조상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다움’을 상실한 세대로 여겨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물론 글자가 처음 고안되었을 때나 인쇄술이 발명 되었을 때도 이러한 반발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와는 비교할수 없이 빠른 발전의 시대에 살고있음이 분명하다) 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잃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결국 ‘인간답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의 고민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경험들을 뒤돌아 보는 것이 단순 옛것에 대한 추억팔이인지 혹은 인간됨에 있어 필수적인 것들을 지켜내려는 노력인지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디지털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이 사명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편리성과 속도를 극대화시키려는 와중에 맥락이 사라지고, 다소의 불편함이 주는 깊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human-centred design은 과연 정말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할수 있는 것인가? ‘현인류는 역사상 유래 없는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들겠다고 출현한 많은 것들이 결국 만든 사람 본인이 재밌어서 일종의 ‘개인적 모험’을 추구한 것의 결과이며, ‘행복의 추구’라는 궁극적 목표에는 별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

 

2. 또 한가지 흥미로워던 부분은 일상속 사물에 숨어있는 정치성에 대한 언급.
“(t머니에 대해) 사운드와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점은 교통카드를 찍는 행위의 디자인이다. 예컨대 버스를 타는 과정만 떠올려보더라도 이 행위가 몹시 압축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버스 요금을 내는 절차가 교통카드를 찍는 행위로 압축된 것이다 … 이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사람이 사라진 지 오래고 거스름돈으로 옥신각신할 일도 없어졌다 …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절차가 축약되면서 지불 감각도 둔해진 것 같다. 말하자면 번거로움이 사라지는 대신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티머니가 직불 카드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서 지금의 청소년들은 어른들보다 일찌감치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다. 간편한 지불에 익숙해지는 한편 과정의 경험이 하나씩 삭제된다 … 소비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절차와 연계된 감각이 사라진다는 것도 짚어봐야 할 점인데 그중에는 우리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도 포함되어 있다”
‘이케아의 flatpacking은 단순함과 효율성의 미학을 창조했다. 갖가지 방식의 자투리 없애기는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관리 원칙을 따른다 .. 합리성이 생산에 투입되는 비용을 낮추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은 확실하며, 그 과정에서 가격이 저렴하다는 매력이 두드러지면서 사용자들의 만족감을 높이는 것이다 … 하지만 자투리를 없애는 것에서 시작된 효율성 높은 제품이 자리를 굳히는 사이에 수준 높은 제품을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 또한 사무실에 놓이는 사물과 가정에 놓이는 사물에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 온갖 종류의 물건이 쏟아지는 오늘날 겉으로는 다양성이 확보된 것 같지만, 사실은 20세기 초에 형성된 표준화의 미덕이 꾸준히 일상 공간을 지배해왔고 사람들은 그 규칙에 익숙해져 있다. 이케아 매장 곳곳에서 이케아 제품으로 꾸며놓은 방은 이러한 표준화를 보여주는 한 풍경이다. 공간의 맥락이 무의미해진 동일화, 즉 공간의 생산라인에서 시작된 치수의 규칙이 아주 사적인 곳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아는만큼 보인다. 집에 굴러다니는 사물에서도 사회와 정치와 철학을 뽑아내는 매의 눈이 부럽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아는게 많아야겠지만 그에 더해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익숙함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건 (적어도 내 수준에선) 사색을 요구하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정신의 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이런 작업 또한 위에서 말한 ‘사라져가는 경험’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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