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 속의 색 – 미셸 파스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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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돌아온지 일주일이 지나 이 글을 쓰는데 내가 책을 다 읽었던 게 한국방문 중이었으니 아마 네달정도가 지났을게다.

책 첫장에 꾹꾹 눌러 쓴 메모가 먼저 눈에 띈다.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
이 책을 통해 내삶 속 알록달록한
기억들이 되살아나길 기대하며.
영권이 런던오는 길에 부탁.
Sep 2015
(책디자인이 정말 맘에든다)’

책 디자인에 대해 좀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보통 시간이 지나면 띄지가 걸리적거려 버리기 마련인데 이 책의 경우엔 띄지가 책을 완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심플한 흰색 바탕의 책 커버 위에 띄지를 씌우면 마치 흰 캔버스에 색을 칠한 듯한 모양이 되는 것이다. (덧붙여 한국에서 몇몇 지인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띄지가 몇가지 다른 종류로 나왔다는 것 또한 발견했다.) 또 타이포그라피의 느낌이 아주 좋았는데 프랑스 작가가 ‘색’이란 주제에 대해 논한 책이라는,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전체적 독서 경험에 일부로서 훌륭히 기능했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진지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있었고 디자이너가 분명 이 책을 읽고 디자인 했을 것이란 생각이들게 한다. 또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보통 책장 윗면이나 하단부에 위치하는 breadsrumb이 책장 안쪽에 있었는데, 사용성 측면에서 있어서는 살짝 의문이 붙지만 예상외의 경험으로 독자를 웃음짓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책을 절반쯤 읽은 후에야 발견한 디테일이었기 때문이다. 색덕후인 작가가 한국판의 디자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마 꽤 흡족해 하지 않았을까.

본론으로 돌아와, 엇그제 김영하 작가의 ‘읽다’를 통해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해 생각해 봤다면 오늘 이 산문집을 통해 산문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넉달이 지나 지금 생각해보니 이 책은 나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아있다. 색의 역사에 관해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배우긴 했지만 (얘를들어 초록색이 흉흉한 색으로 생각 되었던건 초록색 코스튬을 입은 연극배우들이 종종 의문의 죽음을 당했기 때문인데 이건 당시 염색 기술의 한계로 인해 초록색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독성 물질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라던지..) 그 이상의 무엇은 아닌것 같다. 아마도 색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을 배우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문은 어떻게 읽어야하나.
‘이야기 속에서 헤메는’ 경험 자체가 소설 읽기의 목적인 것처럼 산문에서도 굳이 무언가 얻으려 할 필요는 없다. 난 오늘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펼치면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는데 저자가 쓴 산문이 마치 ‘우리가 카페에 마주보고 앉아 커피 한잔을 두고 나누는 삶’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에세이 한편을 다시 읽었는데 뭔가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지인과 커피 한잔두고 나누는 대화에서 모든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디서 집중해야 하고 끄덕여 공감을 표시해야 하는지는 느낌으로 안다. 모든 종류의 책을 작가와의 ‘대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치면 산문은 그중에서도 커피/차한잔 놓고 나누는 대화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소설이 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에서 완전한 ‘몰입’의 경험을 준다면 산문은 작가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여전히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피천득 선생이 수필에 대해 예찬한 글처럼 거기엔 소설과는 다른 일종의 ‘공간’이 있다.

퀄리티 있는 대화, 뭔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대화를 찾는 요즘이다. 독서를 좀더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경험으로 만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요즘이다.

그런 의미에서 dog-ear 해둔 페이지들을 복기하는 건 일단 뒤로 미뤄두고, 이 책은 조금 뒀다가 다시 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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