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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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던 부분은, 원래 내 취향이 이동진과 잘 맞았던 건 분명한데 빨간책방을 애청한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형성된 나의 취향이 어느 정도까지 이동진화 되어있는 것인지의 부분. 시작하자마자 쓱 읽어내려간 이 책에서 독서에 대한,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에 거의 비판의 여지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다. 가볍게 읽은 탓도 있겠지만 만약 나도 모르게 동화된 것이라면 비평가란 족속들은 참으로 무서운 자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서 말한 ‘허무는 독서’보단 ‘쌓는 독서’에 가까웠는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겐 일종의 위로가 되었던 독서 경험이었다. 여러차례 글로 표현했듯 책장이란 내게 있어 현실과 이상의 괴리 자체, ‘reading debt’에서 자유하기가 쉽지 않은 나였기에 본인의 ‘지적 허영심’과 화목한 상태에 있어 보이는 저자의 독서론은 – 예를들면 완독에 대한 강박이라던가 좋은 독서에 대한 그의 생각 –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문학을 읽는 것이 ‘길을 잃어버림’을 위한 것이며 책을 읽는 이유는 그저 ‘책이 거기 있기 때문에’라는 문장은 김영하의 ‘읽다’의 내용과 거의 완전히 같아서 흥미로웠고, ‘(재미를 유지하기 위해)한번에 열권 읽기’라던가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선 (특히 논픽션의 경우) 목차를 활용하고 저자의 호흡이 딸리는 2/3지점을 살피라는 방법론, 그리고 좋은 비평에 이르고 싶다면 책을 요약하는 연습부터 시작하라는 이야기 등은 당장 적용해 보고 싶은 내용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경험이지만 그 경험은 감미롭습니다. 게다가 책을 읽을 때 그 고독은 사실 다른 고독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자 한 자 책을 쓰는 저자의 고독과 한 줄 한 줄 책을 읽는 독자의 고독 사이 … 그 작은 평화 속에 위엄이 있고 위안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연대를 꿈꿉니다.” (p.5)

” ‘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라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은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영이죠. 저는 지금이 허영조차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신의 깊이와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래서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즐기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적 허영심일 거에요.” (p.17)

“(문학을 왜 읽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간접 경험보다는 직접적인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직접적인 경험보다 간접적인 경험이 더핵심을 보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 특히 소설을 통한 간접적인 체험으로 삶의 문제를 더욱 예리하게 생각할 계기를 갖게 됩니다 … 미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미국에 관한 책을 읽는게 아니라는 거죠. 미국에 직접 가보고도 알 수 없는 것들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거죠.” (p.30)

“저는 책 읽는 중간중간에 잠시 멈추는 것, 그것도 독서 행위이고, 더 나아가서 그것이 좋은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 독서를 할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그 긴 시간인 것입니다. (p.57)

“좋은 독서를 위해서는 책을 읽는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 그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서에서 정말 흥미로운 순간은,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을 때 책과 나 사이 어디인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p.80)

북클럽을 시작하며 정기적인 공구의 기회가 생겼고 킨들을 사용하기까지 하면서 안그래도 부담이 되던 reading debt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라선 상황에서 여러모로 내게 적절한 책이 찾아온 것 같다. 저자 또한 ‘책이 나를 억누르는’ 지금의 나와 같은 시기를 겪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런데 세상에 좋은 책은 너무 많고 앞으로 더 많아 질 것임은 분명하니 그렇다면 그저 자유하고 즐기기를 택한 것이겠지. (저자가 말한 ‘아님 말고’의 자세가 바로 그 핵심이다) 나보다 훨씬 심각한 애서가가 먼저 걸어가 본 길을 가볍게 흝으며 가진 자기모순과의 화해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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