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가져 갈 책이라고 해서 처음엔 생존을 위한 실용적 가치를가진 책들을 떠올렸다. (정재승 교수가 선택한 ‘도구와 기계의 원리’가 바로 그런 책이 아닌가.) 내게 있어 무인도에서의 독서행위는 사치를 넘어 거의 무의미함에 가깝지 않을까. 일단 책을 읽은 후 느끼는 지적 만족감을 표현할 상대가 없다. 관계할 인간이 부재한데 영혼과 지성을 살찌워봐야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난 순수한 자기만족을 위해 독서할만큼 쿨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무인도에서의 책은 생존 자체를 위한 – 예를 들자면 불을 피우기 위한 – 재료로서 가장 유용한 가치를 가진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구글로 ‘가장 두꺼운 책’을 검색해본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처음 눈에 띄지만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땔깜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영어로 다시 검색해본 결과,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두꺼운 책은 영국출판사 하퍼콜린스에서 2009년 출간시킨 아가사 그리스티의 ‘Miss Marple Stories’로서 무려 403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을 피우기 위해 하루 10장의 종이를 사용한다는 가정하에 약 202일간 나의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단순 페이지수가 아닌 면적으로 계산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겠지만 그런걸 계산하고 있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짧다!)
그러나 책에 대한 사랑을 종종 고백해온 나름 애서가인 내가,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태운다는 것은 아가사 크리스티에게 실례이고 (사실 추리소설에 취향이 없어 그녀의 책을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더 나아가 책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옳지 않다. 따라서 난 내 비루한 책장으로 시선을 돌려 이중 가장 태워버리고 싶은 책을 찾는다. 평소 책을 매우 지저분하게 읽는 나는 한달 전쯤 알랭 코르뱅의 ‘침묵의 예술’을 읽으며 딱 두번 밑줄을 그었다. 이 독서경험은 나로하여금 아무리 대단한 지성인도 가끔은 자기가 무슨말을 하는지 잘 모르고 책을 쓰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느끼게 했다. 흡사 지 잘난 맛에 사는데 말까지 많은 친구와 단둘이 집에 가게 됐는데 기차가 끝없이 딜레이 되는 상황같았다. 사실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엔 아마도 프랑스 문화에 대한 나의 무지가 큰 영향을 끼쳤을테지만, 어쨌든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침묵을 배우다’라고 쓴 이 책의 편집자는 아마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게 분명하다. 난 이 책에서 어떤 지적도전도 받지 못했고, 주저없이 이 책으로 10일간 따뜻한 밤을 보내길 선택할 것이다.

'무인도에 가져갈 만큼 애정하는 책’을 소개하려 했는데 의식의 흐름을 따르다보니 서론이 본론이 되어버렸다. 약간의 고민 끝에 나는 ‘스토너’를 떠올렸다. 세상에 별다른 족적도 남기지 못한 어떤 이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며, 무인도에서의 삶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실용적 가치까지 갖춘 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매우 드물게도 내가 두번을 완독한 책이다. 이외에도 ‘개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책이 몇권 더 떠오르는데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는 내가 아직 인간임을 계속 상기시켜 줄 책이고,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도 모두 좋은 책이니… 이중 가장 두꺼운 책을 고르면 될 것이다😂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엔 매우 드물게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책을 틈틈히 읽으면 적어도 톰 행크스처럼 배구공과 사랑에 빠지는 난감한 상황은 피할 수 있겠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도 생각났는데 이 책은 1권밖에 읽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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