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9

벌여 놓은 일들이 많아 몸은 바쁜데 그중 뭐 하나 내 뜻대로 흘러가질 않으니 한가하고 태평했던 과거의 기억들로 희귀하게 된다. 새로운 만남들은 언제나 반갑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반복해서 설명해줘야 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도 함께 쌓인다. 처음엔 그런 과정들을 통해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몇년 전에서 정체 되어 있는 내 사유와 고민의 수준에 민망함을 느낄 뿐이다. 나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하고 존재 자체로 압도하는 그런 불편한 만남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이젠 배움이고 뭐고 그냥 편한 사람들이 더 좋다. 쓸데없이 항상 진지해 보이는 내 속의 장난꾸러기를 끄집어내 보일 수 있는 그런 상스럽고 교양 떨어지는 만남도 가끔은 필요하다.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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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서 마주치는 어린아이들은 종종 나로 하여금 경외를 느끼게 한다. 천진한 어린 아이에겐 생면부지한 사람의 눈을 한참동안 직시할 수 있는 슈퍼파워가 있다. 난 대체적으로 보고도 새침하게 모른척하다가 이따끔 그 눈싸움에 응해줄 때가 있는데 이 싸움의 승자였던 적은 거의 없다. 오랜기간 거절감과 두려움을 배우고 타인은 지옥이라고 학습한 어른은 순전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시선 앞에서 마치 벌거벗은 듯 당혹감을 먼저 느낀다. 남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많이 의식하는 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걸 훈련으로 익혔다. 지금도 의식하지 않으면 벽이나 바닥 및 각종 인테리어 제품들과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이건 대화상대와의 친밀도와 큰 상관관계가 없단 것도 알게 됐다. 처음 만났는데도 마치 날 감싸주는 듯한 따쓰한 눈빛이 있는가 하면 오래 봤음에도 그때마다 내가 면밀히 읽히고 있다는 느낌을 줘서 슬쩍 피하게 되는 관찰자의 눈동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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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을 매우 또렷히 기억한다.
친구들이 모두 바쁘기도 했지만 왠지 혼자 있는 것도 운치있을 것 같아서 집앞의 비싼 한식당에 가 회덮밥에 미역국, 맥주를 한파인트 시켜 먹었다. 기분 내겠다고 팁도 많이 줬다. 30이란 숫자가 나에게 툭 던져진 듯한 기분이었는데 딱히 멜랑콜리하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싱겁지만 그냥 맥주 때문에 약간 멍했던게 전부였다. 난 그렇게 30이 되었고 그때 마음이 글에서 여전히 느껴진다는 건 조금 놀랍고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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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때 무슨 생각이었던걸까. 미쳤던 게 틀림 없다. 베를린에서 2년반동안 난 무리했고 그래서 아팠다. 아플 때마다 글을 썼고 이제와 그 글들은 내 손 발의 온 마디에 또 다른 종류의 아픔을 안겨 주고 있다. 5월 북클럽 준비를 위해 정말 읽어야 할 책이 여기 있었다.

저때 참 사랑타령을 많이 했는데. 굴레에서 벗어나기 까지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말하자면 탈영에 성공했다. 사랑탈영.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을 시작한지가 얼추 4개월정도 된 듯 싶다.

오래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걸 시작한 이유는 친구들의 대부분이 거기 있어서였다.
SNS는 결국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받고 전하는 용도니까. 황량해진 페이스북에서 계속 기웃거리는 건 더이상 내게 있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 기본적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이 아니다. 딱히 잘 찍는 편도 아니고 하물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종류의 시크하고 이쁜 그런 사진은 더더욱.

그러고보니 근래에 들어서 내게 SNS는 내 생각을 표출하기 위한 창구로 더 많이 사용되어 왔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똑같이 한다. (그래서 성의 없게 사진을 툭 던져놓고 장문의 글을 쓰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뭔가 난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이따끔 친구들의 계정에 들어가 보면 어떻게하면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진심으로 경이롭다. 필시 누구에게나 삶이 항상 그렇게 시크하고 이쁘고 맨질맨질한 것은 아닐탠데 인스타그램에서 그런 생각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장문의 글이나 깊은 속마음을 꺼내는 일 같은 것들도 별 가치가 없다. (물론 가끔 내 꾸질꾸질한 생각을 수고스럽게 읽어주는 친절한 사람들도 있다) 인스타그램 위의 삶은 그저 쿨하고 미니멀리스틱하며 남들에게 보여질 만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걸 딱히 비판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난 그냥 거기 있으면 왠지 모르게 좀 답답하다. 그냥 좀 더 날것의 나를 꺼내 놓고 싶다. 그래서 먹은 음식이나 볼거리를 내놓았던 게 갑자기 뭔가 겸연쩍어서 모두 지웠다.

누가 굳이 읽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쿨하지 않다. 누가 읽어줬으면 좋겠고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좀 슬플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 존재한다고 알려주고 싶고 확인 받고 싶어서 계속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 이런 자기모순을 매번 마주해야하는 게 아프고 슬프다. 아.

책장


예전엔 책장을 보면 뿌듯했다. 열심히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절반이어도 형형색색 잘 배열 해놓은 책들을 보고만 있으면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배가 불렀다. 그리고 그걸 게으른 지적 허영심이라고 부른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젠 책장은 내게 있어 삶에게 진 빚과 같은 의미, 내가 바라는 나와 거기에 못미치는 나 사이의 간격 그 자체. 그래서 보고 있으면 뭔가 간질간질거리는 조바심에 속이 쓰리다. 아마 넌 평생 여기서 자유하지 않기를 선택할게라고, 책들이 말하는건지 내가 되뇌이는건지 모를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말이지! (베를린에서 이사하면서 인쇄책의 불편함을 느껴 ebook을 실험중이다 – 결국 거의 다 두고 왔다 – 한동안 Ebook으로 책을 모았더니 눈으로 느껴지는 죄책감은 줄었으나 잔뜩 사놓고 책 자체를 아예 잊어버리게 되는 부작용이..)

뒤늦은 라라랜드 후기

– 먼저, 마법 같은 시간을 선사해준 데미안 샤젤에게 박수를. 영화 혹은 소설, 어떤 이야기속에 너무나 깊이 몰입하면 – 마치 온몸을 사용해서 보고 들은 것처럼 – 실재로 몸이 물리적 피로를 느낄 때가 있다. (가장 최근 이런 경험을 했던 게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나서였는데 그땐 말그대로 몸이 두들겨 맞은 듯 축 늘어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엄청난 기대와 hype를 가지고 작품을 대했으니 이런 경험은 더욱 흔치 않다.

– 모두가 꼽는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은 마지막 플래쉬백이겠지만 내 마음이 가장 격하게 동했던 순간은 미아의 마지막 오디션씬이다. 실재로 같이 영화를 관람한 친구 중 하나가 2주후 미국에서 드라마스쿨 오디션을 보는 배우지망생이었다는 재밌는 우연 때문이었을까. 미아의 초조함과 두려움 뒤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내게 모두 전달 된 기분이었고 그래서 부분적으로 세바스찬보단 미아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개인적으론 ‘so here’s to..’ 부분을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

– 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르는 이 시점에서 격양된 톤으로 ‘나에겐 꿈이 있어요!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를 결연히 외칠 줄 알았는데 난 이 장면에서 데미안샤젤에게 땡큐!를 외친다. 이 노래는 단지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찬가가 아니었다. 대신 꿈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바보처럼 보이고,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들을 위한 노래였다. 멀쩡하게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나와 6년동안 아무런 성과 없이 문을 두드렸던, 절박한 마음으로 빚까지 내면서 1인극을 준비한 미아였기에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생각해보니 내 마음이 아팠던 건 그때문이었을지도. 듣는이로서는 동했으나 내 노래라 부르기엔 부끄럽겠다 싶어서.

– 세바스찬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재즈바에서 징글벨을 연주할 때 한번, 풀장에서 Take On Me를 연주할 때 한번, 그리고 새 밴드와의 첫 합주 때 한번. ‘I don’t belong here’라고 말하는 듯한 어색한 표정에 나도 피식 웃었지만 그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 적어도 나한텐 그랬다. 생존의 문제와 누군가에 대한 책임감 앞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멀어지는 기분. 나 또한 그 갈림길에 서 있다.

– 뮤지컬 장면이 끝나면 격한 안무 뒤 여전히 헉헉 거리는 배우가 바로 대사를 치는 식의 구성이 흥미로웠다. 그건 우리 매일의 일상도 깔끔하게 정돈된 choreography가 없을 뿐, 매순간이 뮤지컬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가 아닐까. 말하자면 예술의 일상성.

– 그런 의미에서 (내 기억으론) 영화중 유일하게 뮤지컬과 현실이 분리되는 마지막 회상씬이 더욱 흥미로웠다. 이 장면 때문에 어떤 이는 이 영화를 ‘슬픈 결말’이라 말하기도 했다. 꿈을 이뤘으니 ‘해피 엔딩’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는 그런 식의 결말을 짓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그저 삶은 선택의 연속일 뿐이며 선택은 끊임 없이 배제하는 것이라고 매우 담담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  라라랜드와 ‘담담’이란 형용사가 함께 사용된다는 데 누군가는 의아해 하겠지만 난 그랬다. 달콤과 씁쓸함, 환상과 지독한 현실이 공존하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삶의 결국에 대한 긍정이고 찬가로 마무리 된다.  그래서 결말에 대해 굳이 편리하게 얘기하자면 난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말 할 것이다. 사랑이 이뤄졌다거나 염원하던 꿈을 이뤄서가 아니라, 삶은 계속 되는거니까. 지나고 돌아보면 다 아름답게 남길 수 있는 그런 기억들이 있고, 서툴고 씁쓸했던 결착들이 모여 우리 삶을 더욱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마지막 두 사람은 그걸 알아 웃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기에, 결국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